
" 연 "
D 선배의 문자였다.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이미 연을 날리러 한강까지 자전거 타고 나갔다는 이야기. 에너지가 끓어 넘치는 D 선배를 보고 나도 뭔가 해야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작년 10월부터 기숙사 방에서 굴러다니던 연을 챙겼다. 피곤하고 지친 기분은 사라졌고, 대신 약간 들뜸과 신선한 에너지가 들어오는 듯한 느낌. 토이의 음반을 찾고, 서랍 속에서 잠자던 CDP의 배터리를 갈고, 옆구리에는 연을 끼고, 자전거를 타고, 강풍을 맞으며 갑천으로 향했다. 학교 앞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면서, 정차된 차 안의 보이지 않는 시선들을 맞고 있으니 기분이 조금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이런 식으로 우스꽝스러운 괴짜가 되는 상황은 우울함을 단번에 날려보내곤 한다. 귀에서 울리는 토이의 음악은 마침 딱 어울리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예쁜 수첩과 펜을 준비 한다 볕이 잘 드는 카페를 찾아서 가져갈 책과 음악을 적는다 빼놓지 말아야 할 편한 플랫 슈즈 너와 함께 지도에 색칠한다 두근두근 내 맘도 무지개 빛"
방안에서 너무 오래 있어서 그랬는지, 지난 번 날리고 돌아오면서 그런건지, 연이 상해서 잘 날지를 않았다. 계속해서 왼쪽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바닥으로 처박히길 반복했다. 그래도 한 너댓번은 하늘 높이 날려보내기도 했는데, 그것도 10 몇 초 뿐이고, 금방 왼쪽으로 휙 돌아서 무서운 기세로 땅바닥으로 돌진하곤 했다. 가오리 연의 가운뎃 살이 휘어서 중심이 맞질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스카치 테이프만 있었어도 고칠 수 있을텐데..
결국 그냥 연날리기는 그렇게 50여분간 씨름하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실을 끊어서 신나게 달리고 날고 춤추는 바람에게 연을 주었다. 난 도저히 그 고장난 연으로 놀 수가 없으니, 너라도 신나게 가지고 놀라고. 놓자마자 순식간에 연을 들고 100m도 넘게 도망가는 바람을 보는 기분은 그리 싫지 않았다. 후련하다.
그렇게 연을 날려보내고 나서는 갑천변의 너른 풀밭에서 풀을 뜯고 다녔다. 나무 한그루, 천막 한 개 없이 풀밭만 몇 킬로나 길게, 그리고 또 넓게 펼쳐진 그곳은 크로버의 천국이었다. 그리고 30분 후 다음 수업을 위해 돌아가는 내 자켓 안 주머니에는 네잎 크로버 2장이 들어있었다. 난 여전히 운이 좋구나. 작년 가을에 삼켰던 네잎 크로버가 떠올랐다. 그때 삼켰던 네잎 크로버는 어느새 내 위장 속에서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다. 난 영양분을 제공하고, 네잎 크로버는 행운을 제공한다. 이 정도면 꽤 괜찮은 거래요, 공생관계인 셈이다. 네잎 크로버를 주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2장 가지고서는 턱없이 모자라다. 나야 뭐 내 안에서 튼튼하게 자라난 네잎 크로버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니까. 일단 한장은 D 선배에게 꼭 주어야겠다. 나머지 한장은 누구에게 주어야 할까? 1학년 때, 아침 첫 손님이라고 네잎 크로버를 주셨던 잡화점 주인 아주머니한테도 드려야 하고, 한번도 살아있는 네잎 크로버를 본 적이 없다던 후배한테도 주고 싶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오늘도 그 후배의 말이 생각나서 네잎 크로버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가다가 풀이 없는 공사장 같은 곳을 지나가다가 자전거 바퀴가 온통 진흙 범벅이 되어버렸다. 바퀴가 봄비를 잔뜩 머금은 진흙에 박혀대서 도저히 타고 갈 수가 없어서 내려서 걸어가야 했는데... 와... 사람도, 차도 잘 안 다닌 곳이라 그런가 흙이 완전 스펀지 같이 엄청 탄력이 있었다. 발이 거의 10cm도 넘게 푹푹 빠지는 곳이 있어서 완전히 기겁을 했다. 완전히 늪지나 다름이 없었다. 풀밭으로 나오니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ㅎㅎ 그렇게 진흙범벅이 된 자전거와 신발 밑창, 그리고 희미하게 진흙이 튄 옷을 입고 세미나를 들었다. 예의가 좀 없는 것 같지만. 매점에서 백만년만에 산 꿈틀이를 씹으면서 졸았던 세미나 시간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지도를 색칠하며 여행하는 것을 꿈꾼다. 두근두근거리는 모험의 세계를 앞에 두고 난 공상에 빠지는 것, 그리고 일상의 작은 모험으로 간신히 타협을 이룬다. 멋진 삶을 위하여 에서 1보 후퇴는 100보 후퇴와 같은 것이라 이야기했던 것을 떠올리며 불안과 자괴감에 빠지는 나에게 이야기한다. 이것은 후퇴가 아니라, 연습이노라고. 저 폭풍 속에서 결국 실을 끊고 떠나보낸 연처럼. 나도 때가 되면 스스로 실을 끊고 날아갈 것이노라고.
오늘. 나의 꿈을 작은 상자에 꽁꽁 묶어. 시간의 거센 물살에 떠내려 보낸다. 미래가. 한치의 변함도 없이 온전히 받아볼 수 있도록.
//
새벽이라 그런가, 글에서 멜랑꼴리함을 떼낼 수가 없다. 에잇. 원래 내 글이 다 그렇지 뭐 -_-.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