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지혜
 

나는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열심히 책을 읽는다. 당연하고 간단한 명제도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한참을 생각하고, 논리라는 도구를 이용해야 겨우 이해를 하곤 한다.

말하자면 이런 거다. 얼마 전에 나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를 듣고 삶이 반복되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아름답고 소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전에는 안 그랬냐고? 안 그랬다. 난 삶이 반복되지 않는 것이 너무나 불만이었다. 생은 반복되지 않기 때문에 너무 무거웠다. 좋은 콘서트를 보고 나오서는 "또 보고 싶다!" 를 연발했다. 음반은 듣고 싶을 때 언제든 다시 들을 수 있는데 그럴 수 없는 라이브 공연은 값은 비싸고 한번 밖에 못 들으니 효율이 안 좋다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다르다. 그런 사람들은 원래 모든 걸 알고 있다. 그들은 이런 사실들에 대해 뭔가 대단하다는 듯이 적을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뭔가 고귀한 피를 타고난 것만 같다.

내가 생각하는 어떤 현명한 사람이 나의 글을 보고 자기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웃음이 나왔다. 지혜로운 그가 나의 얄팍한 지식을 보고 부러워하다니. 실상은 그가 나보다 지식적인 면에서도 훨씬 뛰어난데 말이다. 나는 지혜롭지 못한 것을 지식으로 채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지혜롭지 못해서 어떻게 글이라도, 다른 사람의 생각이라도 많이 보면 지혜로워지지 않을까 하여 지식을 채우려는 사람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 지식적인 측면을 보고 부러워하는 그 사람을 보면서 아이러니를 느꼈다. 이봐요. 저는 당신이 훨씬 부럽습니다. 타고난 현인은 돌발상황에서 직감적인 판단이 옳은 경우가 많지만, 저처럼 미련하고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돌발상황이나 갈등상황에서 항상 나쁜 놈이고 성급한 사람이 됩니다. 개념이 없다는 표현이 딱 맞지요.


예를 들어보자.

어느 나라에 기타 소리를 너무 좋아하지만 기타 연주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손은 너무 투박하고 둔했고, 요령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기타 연주를 포기할 수 없었고 수십년을 연습하여 어느 정도 대가가 될 수 있었다. 재능이 없었던 만큼 그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기타 연주의 메커니즘을 연구하였다. 손가락의 움직임, 손목의 각도, 탄현, 힘을 주는 정도, 연습법 등 기타 연주를 배우면서 겪는 모든 종류의 문제를 그는 쉽게 넘어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는 그가 연구한 것들을 모아 기타 교본을 냈다.

그 나라에 기타를 너무 좋아하고, 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떤 어려움도 없이 대곡과 난곡들을 섭렵했다. 그의 손은 축복이었다. 젊은 나이부터 그는 대가의 대열에 올랐다. 어느 날 그가 위의 사람이 쓴 기타교본을 보았다. 그는 그 심오함과 과학적인 서술에 놀랐다. 이렇게 기타 연주에 대해서 세세한 부분까지 알고 있다니. 자기는 수없이 기타연주를 하였지만 전혀 생각도 못해보고,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부분들이었다. 그는 저자가 엄청난 경지에 오른 사람일 것이라 생각하여 그를 찾아갔다.
물론 그는 저자를 만나보고 실망하였다. 그의 기타실력은 자신보다 훨씬 형편없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수십년을 기타만 생각하고 연구해왔지만 그는 엄청난 연습량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손쉽게 칠 수 있는 중간 난도의 곡조차 치지 못했다.


타고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다. 타고난 사람이 노력하고 즐기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물론 수많은 범인들에게 갈 길을 제시하기에는 기타교본의 저자와 같은 사람이 더 유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궁극적인 성취에 있어서, 더 높은 수준의 연주와 음악에 있어서는 젊은 기타 연주자가 훨씬 높은 성취를 이룰 것이다. 그가 기타교본의 지식들을 몰랐던 것은 그가 멍청해서가 아니다. 그는 이미 그것을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몸으로 체득한 이는 그것을 지식으로 알지 못해도 행동으로 행한다. 몸으로 체득하지 못한 이는 그것을 지식으로써, 의식적으로 습득할 수는 있으나, 그것은 수많은 연습을 필요로 하며, 생소한 상황, 이를테면 미처 연습하지 못한 곡을 받는 것과 같은 때에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본성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내가 느끼기에 난 조금은 천박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 일단 교만하고, 좀 부도덕하기도 하며, 판단력과 통찰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책을 읽고 경험을 함으로써 이러한 점을 고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잘 연습된 상황에서는 습득한 새로운 본성을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 잘 깎고 반들반들하게 윤을 낸 표면을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거나, 혹은 상황이 바뀌지 않았더라도 시간이 오래 지나면, 본래의 볼품없는 본성이 드러나고야 만다. 끊임없이 갈고 닦고, "이 정도면 되겠지?" 싶을 때엔 번번히 매끄러운 표면에 기스가 나고, 모난 구석이 튀어나오며 좌절시키곤 한다.

난 타고난 지혜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참 부럽다. 천재, 초인.

그렇지만 또 나의 모습에 큰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번번히 좌절을 주는 결과가 기다리긴 하지만, 적어도 자신을 갈고 닦는 과정은 즐겁기 때문에. 인간은 변화할 때에만 삶의 의미를 찾는다.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동물이며, 변화하지 않는 인간은 죽음이나 다름 없다.

by mystery | 2008/12/17 23:01 | 낙서와 상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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